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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칼럼니스트/카페앳홈 칼럼

커피 문화속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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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인들에게 있어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귀한 자원인 동시에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재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커피 세리머니는 종교적인 성향이 강하다. 세리머니 순서는 먼저 커피를 볶을 불을 지피고 커피 외피를 까서 물로 씻은 다음 넓다란 팬에 로스팅을 한다. 로스팅 된 커피를 빻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약간의 소금이나 향신료를 넣고 사람 수만큼 잔에 나눈 다음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나눠 마신다. 이 커피 세리머니는 커피를 세잔 대접하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여 예멘->메카->이스탄불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 되었다. 14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건재했던 오스만 제국(옛 터키 왕조)이 예멘에서 유럽에 이르는 물류 거점을 장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오스만 제국의 커피문화도 전파되었는데 이 시대에는 남자가 아내에게 커피콩을 충분히 대주지 못하면 이혼을 당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콩이 진짜 커피콩을 의미 하는지 아님 다른 콩(?)을 의미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 하지만만…… 

커피가 유럽으로 건너 가면서 1670년대 영국의 거리에는 커피하우스가 넘쳐났다. 이 당시 커피는 남성의 생식 능력을 빼앗는 건조한 물질로 인식되어 전반적으로 피로와 무기력을 유발한다는 의학적 상식이 굳혀져 있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맥주를 마시던 습관을 지녔던 남자들이 커피하우스로 발길을 옮겨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길어지자 급기야 런던의 한 여성 단체가 “The women’s petition against coffee…..”라는 제목으로 런던시장에게 자신들의 성생활을 보호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게 된다. 이 탄원서의 내용인즉 가장 강한 남성의 상징이던 영국 남성들이 이교도의 음료인 커피에 홀려 맥이 빠졌으며 이로 인해 그들의 연인까지 다치게 했다.라는 것이다

 < 영국여성들의 청원서 표지, 1674>

이에 대해 남성들의 반론은 하소연에 가깝다. 혹독한 면학 혹은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지치고 힘들 일을 마친 뒤에 원기를 되찾기 위해 도대체 어디를 가면 좋단 말인가. 젊은이나 소시민이 저녁에 한두 시간을 죄를 짓는 것도 아니면서 유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커피하우스 말고 어디가 있단 말인가. 잘 알다시피 인간을 읽는 것은 책을 읽는 것 보다 결실이 많다. 그 면학을 위해 커피하우스만큼 휼륭한 도서관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1675년 커피하우스 옹호」글 중에서.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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