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을 거친 후 나폴레옹이 유럽을 지배하던 때, 정복하고자 하는 나라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단행한 대륙봉쇄 정책으로 커피의 유입이 끊기면서 유럽은 정신적인 공황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이때 대용할 음료를 찾기 위한 대용 음료산업이 부흥 했고, “독일의 경우 대륙봉쇄에 의해 발생한 설탕과 커피의 결핍이 독일인을 반 나폴레옹의 봉기로 내몰았고 해방 전쟁의 토대를 마련하는 전기가 되었다.” 라고 칼 마르크스가 회고할 정도이니 얼마나 충격이 심했는지 짐작이 된다
1차,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군인들에게 지급해야 할 커피 재고를 확보하지 못해 ‘커피, 홍차 및 그 대용품을 위한 전시위원회’까지 만들어 커피 재고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연합군의 방해로 커피 공급이 끊기면서 전시하에 독일 시민과 군대를 돌아 흐르던 검은 혈액은 활력을 잃었고 점점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일본 역시 전시에 커피 공급이 끊겨 ‘내가 지금 한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고등학생의 기고문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커피의 여행은 커피 소비의 최상위에 위치한 미국에 관한 사건이다.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처럼 차 문화권에 속해 있었으나, 지금처럼 커피 1위 소비국으로 바뀐 것은 18세기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던 영국이 미국에서의 홍차 판매 독점권을 자국의 동인도회사에 주고, 동시에 그 차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 하려고 했으나, 미국인들이 이에 반발에 동인도 회사 배를 급습해 홍차의 상자를 모두 바다에 던져버린 사건이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가 비교적 연한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진 홍차 맛을 그리워한 탓에 이때부터 홍차에 가깝게 커피를 만들어 마시던 버릇 때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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